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키츠 (문단 편집) === 건강 악화와 죽음 === 1820년 초 키츠는 우연찮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게 된다. 그는 입에서 나온 자신의 피 색깔을 보고 자신도 [[폐결핵]]에 걸렸음을 금방 알아차렸다.[* 아무래도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니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. 더욱이 그의 어머니와 동생도 결핵으로 사망하였었다.] 그는 이 사실을 자신의 친구인 찰스 아미티지 브라운(Charles Armitage Brown)에게 말했다고 한다. > '''“I know the colour of that blood! It is arterial blood. I cannot be deceived in that colour. That drop of blood is my death warrant. I must die.”''' > “난 저 피의 색깔을 알아! 이건 동맥혈이야. 내가 저 색깔을 모를 리가 없어. 저 피 한 방울이 나의 사형 집행 영장이야. 난 분명히 죽을 거라고.” 당시 폐결핵은 유럽을 휩쓸던 전염병이었으며 키츠의 어머니는 물론, 동생 토마스도 마찬가지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츠는 더 많은 시들을 써내려갔다. 병마와 싸우던 이 시기에 쓰인 시 중에 대표적으로 <나이팅게일에 부치는 송가(Ode to a Nightingale)>가 있다. > '''어둠 속에서 나는 듣노라, 아주 여러 번''' > '''포근한 죽음에 절반쯤 빠져 있었느니''' > '''아름다운 가락으로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부르네,''' > '''내 고요한 숨결을 공기 중에 흩뿌려달라고''' > '''지금은 죽기에 딱 알맞은 시간''' > '''아, 고통도 없는 이 한밤중의 숨 멎음이란''' > - 존 키츠 <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> 中 키츠의 병세가 악화되자 의사의 조언에 따라 요양 차원으로 [[교황령]][* 지금의 [[이탈리아]] 중부 지방.] [[로마]]로 떠나기로 했다. 날씨도 항상 우중충하고 소음들로 가득 찼던 [[런던]]과는 달리 당시 로마는 언제나 기후도 온화하고 평화롭기도 해 북유럽 지역의 사람들이 요양지로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. 그러나 로마로 떠날 때 약혼녀 브론이 아닌 그의 절친 조세프 세번(Joseph Severn, 1793~1879)과 함께 떠났다. 브론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키츠는 자신의 폐결핵이 브론에게까지 전염될까봐 말렸다고 한다. 대신 키츠는 브론에게 “당신 없이도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선물을 하나 줘.”라고 부탁했다. 로마로 출발하는 배를 타던 날, 브론은 키츠에게 타원형 홍옥수[* 붉은색, 짙은 귤색을 띄는 반투명한 조약돌의 한 종류다.]를 주었다. [[로마]]에서 친구 세번의 헌신적인 간호 아래에 요양 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키츠는 계속 시를 써내려갔다. 그는 이미 양쪽 폐 기관에서 심각한 내출혈 증상으로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다시 [[런던]]으로 돌아가 브론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. 그러나 1821년 2월 23일, 25세의 나이로 브론이 준 작은 홍옥수를 쥔 채 결국 숨을 거두었다. 병으로 죽어가던 키츠 곁에는 그를 간호하던 친구 세번이 유일했고 세번은 곁에서 키츠의 죽음을 슬퍼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